☞ 이야기속으로한 소년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 오면서 준비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 6:9 참조). 이 도시락을 주님 손에 드리자 5,000명 이상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것을 보며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삶을 바친 외국인 선교사들이 떠올랐다. 무시와 배척을 받고, 질병으로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헌신한 그들로 인해 이 땅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그들은 이러한 열매를 직접 보지 못한 채 순교했지만, 이 땅의 백성이 하나님을 높이는 그날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으리라. 소년이 드린 작은 도시락을 통해 주님이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셨듯이, 그 선교사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주님은 많은 교회와 하나님 백성이 세워지는 역사를 일으켜 주셨다. 내가 주님께 드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무엇일까? 1년 전부터 동남아시아를 품고 때때로 기도해 왔는데, 오늘부터 매일 그곳을 위해 기도하기로 결단한다. 이 기도를 주님이 받으시고, 현지 선교사들을 통해 놀라운 오병이어의 역사가 일어나 수많은 하나님 백성이 그 땅에 세워질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 선한 의도로 시작했다가 낙심해서 중도에 포기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본문속으로
1.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를 보며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나요?(34절) 제자들은 무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여겼나요?(35~36절)
* 제자들의 제안에서 느껴지는 한계는 무엇인가요? 무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셨고,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37절)
*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명하신 이유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제자 된 우리에게 원하시는 태도는 무엇일까요?
☞ 생활속으로
예수님이 굶주린 무리를 위해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신 이유는 제자들의 반응을 살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은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했습니다. 최소한 200데나리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어떻게 해서든 무리를 먹이고자 하는 태도가 그들에게 있는지를 보기 원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능력의 근원이 바로 예수님께 있음을 가르치기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큰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목자로서의 책임감과 주님을 향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기
- 목자 없는 양 같은 영혼들을 보며 불쌍히 여기는 심령을 주시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제 삶을 헌신하게 하소서.
- 제게 없는 것을 바라보기보다 제게 있는 오병이어를 주님께 드리게 하소서. 연약한 저를 들어 쓰시는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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